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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희 칼럼] 법 위의 권력, 절차 위의 정치 — 사법의 독립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는 방향을 잃는다
  • 윤재 논설위원
  • 등록 2025-11-11 12:39:44
  • 수정 2025-11-11 15: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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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희 이노바저널 논설위원(국가원로회의 정책위원)

대한민국은 지금 “법치의 흔들림”이라는 불안한 진동 위에 서 있다.
정치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지만, 법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그 중심에서 한동훈 전 대표의 말—“대한민국 검찰은 자살했다”—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국가의 법치 기반이 붕괴하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검찰의 항소 포기, ‘정의의 자해’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민간업자들에 대해 항소를 포기한 결정은, 사법 독립의 침식이 얼마나 깊이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면, 이는 정의의 완결을 포기한 것이자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 것이다.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상, 피고인만 항소할 경우 상급심에서 형이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런 법적 구조를 모를 리 없는 검찰이 항소를 접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다. 정치적 계산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법의 칼을 쥔 손이 더 이상 국민이 아닌 권력을 향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정의의 칼이 아니다.


삼권분립의 붕괴,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정치권력의 영향이 사법부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정권의 이해관계가 수사 방향을 좌우하고, 법무부나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국민 정서”를 이유로 법원의 판결에 공개적 압박을 가하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삼권분립은 헌법이 설계한 민주주의의 최소 안전장치다.
그중에서도 사법의 독립은 권력 남용을 막는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권력이 사법을 ‘통치의 도구’로 재편하는 중이다.
정치가 법을 지배하고, 법이 다시 정치의 언어로 해석되는 순간—민주주의는 절차를 잃고, 공정은 신뢰를 잃는다.


“내 편의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의 태도와 기소 방향이 바뀐다면, 그 체제는 법치가 아니라 보복이다.
법의 이름으로 적을 단죄하고, 침묵으로 아군을 보호하는 구조는 국가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법치’란 정치적 편향이 없는 절차의 신성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의 사법은 절차가 아니라 정치의 의중을 읽고 있다.
이것이 바로 “법 위의 권력, 절차 위의 정치”다.
그 피해는 특정 진영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돌아온다.


사법의 독립은 정치의 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조건이다


법은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권이 법을 도구로 삼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편의 정의’가 아니라 ‘모두의 법치’다.

이를 위해선 제도적 개혁이 필수다.

  • 대통령의 검찰 인사권과 예산권을 분산시켜야 한다.

  •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로 제도화해야 한다.

  • 법관 및 검사 인사에 정치권의 간접 개입을 막는 독립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감시와 시민적 참여다.
    정권이 법 위에 서려 할 때, 국민이 침묵한다면 그 침묵은 곧 동조가 된다.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법은 권력 위에 있어야 하고, 사법은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치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사법의 굴종은 곧 국민 주권의 상실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정권의 충성심을 경계하고,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그것이 민주국가의 최소한의 품격이다.
법이 살아 있어야 정치가 바로 선다.
그 믿음을 되살리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헌법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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