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신 물결: xAI의 세계 모델, OpenAI GPT-5 업데이트, Hugging Face 오픈소스 NLP 모델 출시
2025년 말, AI 분야에서 주요 기업들의 연이은 발표가 이어지며 기술 발전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xAI의 로보틱스용 물리 세계 이해 모델 개발, OpenAI의 GPT-5 시리즈 업데이트, 그리고 Hugging Face의 맞춤형 NLP 오픈소스 모델 출시가 그 중심에 있다. 이러한 발전은 로보틱스, 자연어 처리, 콘텐츠 생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용적 적용을 촉진할 ...
최득진 박사 소장 원본 | ![]() ![]() |
저자=이노바저널 주필 최득진 박사
[들어가는 말]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는 단순한 사법 행정의 효율화 조치가 아니라 권력분립 질서의 재편을 시도하는 헌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첫째, 특정 범죄 유형을 이유로 재판부를 법률로 지정·고정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법관에 의한 사법권 행사’ 원칙을 제도적으로 변형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둘째, 이는 위기 상황에서 통치 효율성과 국가 질서를 앞세워 사법권을 정치적 목적에 동원하려는 국가권력 강화 논리와 맞닿아 있다.
셋째, 이러한 구조는 과거 한국 헌정사에서 반복되어 온 예외상태 논리와 결단주의적 통치관을 제도적으로 재현할 위험을 내포한다.
넷째, 입법부가 재판 구조에 직접 개입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 사법부의 독립성은 장기적으로 정권 성향에 따라 가변적인 영역으로 전락할 수 있다.
다섯째, 이는 법치주의가 ‘권력 통제의 원리’에서 ‘권력 집행의 도구’로 전환되는 질적 변곡점이 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여섯째, 결과적으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는 범죄 대응을 넘어 헌법 질서의 방향성과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자체를 시험하는 정치·법적 실험으로 평가된다.
※ 이상 점들 등을 염두에 두고 학자의 양심과 언론인의 사명감으로 본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께 맡깁니다. 독자 여러분 깊이 숙고하며 일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54년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1953년 한국전쟁의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직후, 물리적 재건과 함께 국가의 법적, 제도적 기틀을 확립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가 제기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1954년 5월, 한국법학협회(韓國法學協會)는 학술지 『법학연구(法學硏究)』 창간호를 발행하였다.1 이 창간호에 실린 한태연(韓泰淵) 교수의 논문 "권력분립과 대한민국헌법"은 단순한 학술적 기고문을 넘어, 서구의 헌법 이론을 한국의 정치적 토양에 이식하려는 최초의 체계적인 시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본 보고서는 한태연의 해당 논문을 중심으로 1950년대 초기 한국 헌법학계가 당면했던 이론적 난제, 즉 '서구적 입헌주의 이상'과 '전후 국가 재건을 위한 강력한 통치권의 필요성' 사이의 긴장을 분석한다. 특히 한태연이 도입한 독일 공법 이론이 어떻게 한국적 권력분립론으로 변용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론적 맹아가 어떻게 훗날 제4공화국(유신 헌법)의 권위주의적 통치 논리로 진화했는지를 통시적으로 추적한다. 이는 헌법 텍스트의 해석을 넘어,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의 정당성이 어떻게 이론화되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참고로, 본 보고서의 주제 논문은 저자가 한국법학협회(韓國法學協會)의 학술지 『법학연구(法學硏究)』 창간호(1954년 5월)를 소중히 소장 중이어서 십분 활용하였음을 밝혀 둔다.
한국법학협회가 발행한 『법학연구』 제1권 제1호는 해방 이후 미 군정기와 전쟁기를 거치며 파편화되었던 한국 법학계가 독자적인 학문적 정체성을 모색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2 당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한태연은 이 학술지를 통해 서구,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공법 이론을 소개하며 한국 헌법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3
같은 호에 실린 황산덕(黃山德) 교수의 "켈젠 교수의 학설변경과 그 의의"가 법실증주의적 관점에서 순수법학을 논했다면, 한태연의 논문은 칼 슈미트(Carl Schmitt)와 게오르그 옐리네크(Georg Jellinek)의 국가철학을 빌려와 헌법을 '국가의 결단'이자 '권력의 조직 원리'로 파악하는 결단주의적 경향을 드러냈다.1,2 이는 1950년대 한국 헌법학이 앵글로-아메리칸의 법치주의 전통과 대륙법계의 국가학(Staatslehre) 전통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용광로였음을 시사한다.
한태연의 1954년 논문은 몽테스키외(Montesquieu)로 대표되는 고전적 권력분립론, 즉 '입법·행정·사법'의 기계적 균형 모델이 20세기의 복잡한 행정국가화 경향 속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5 그는 19세기 자유주의적 법치국가 모델이 전제로 했던 '시민 사회의 자율성'과 '국가의 소극적 역할'이 현대 사회, 특히 전후 한국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적용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 국가는 생존과 발전을 위해 신속하고 통일적인 의사결정을 요구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집행권(행정권)의 강화를 수반한다.7 따라서 헌법 제40조가 입법권을 국회에, 제66조가 행정권을 정부에 부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입법 기능의 상당 부분이 행정부로 이동하는 현상(위임입법의 증대 등)은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현대 국가의 보편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했다.6
한태연 헌법학의 핵심적인 이론적 기여는 '국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의 원리와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의 원리 사이에 존재하는 내재적 긴장을 포착해낸 데 있다.5
국민주권의 원리 (수직적·통일적): 주권은 불가분이며, 국민의 총체적 의사는 단일하게 표출되어야 한다. 이는 권력의 집중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권력분립의 원리 (수평적·견제적): 국가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권력을 기능적으로 분할한다. 이는 권력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
한태연은 1954년 연구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이 두 원리를 병렬적으로 채택하고 있으나, 건국 초기와 전쟁 직후라는 특수한 '실존적 상황'은 권력분립보다는 국민주권의 통일적 실현, 즉 강력한 리더십을 요청하고 있음을 암시했다.3 이는 그가 칼 슈미트의 헌법 이론, 즉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는 명제를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3. 이원적 권력 구조론: 국가적 권력과 민주적 권력
이 연구의 가장 심층적인 분석 대상은 한태연이 1950년대부터 발전시켜 훗날 유신 헌법의 이론적 기초로 삼은 '국가적 권력'과 '민주적 권력'의 이분법이다. 1954년 논문은 이 이론이 완성된 형태는 아니었으나, 그 이론적 단초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8
구분 | 국가적 권력 (State Power) | 민주적 권력 (Democratic Power) |
본질 | 국가의 생존과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실존적 권력 |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수렴하는 과정적 권력 |
담당 주체 | 대통령 (국가원수로서의 지위) | 의회 및 정당 (부분적 이익의 대표) |
기능 | 통치행위, 비상대권, 헌법 수호 | 입법, 예산 심의, 국정 통제 |
권력분립과의 관계 | 권력분립의 대상에서 제외 (초월적 지위) | 권력분립(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적용됨 |
한태연은 국가권력을 단일한 덩어리로 보지 않고, 국가의 존립 자체를 담당하는 고도의 정치적 권력(국가적 권력)과 일상적인 국정 운영을 담당하는 권력(민주적 권력)으로 구분했다.8 이 논리에 따르면, 삼권분립은 '민주적 권력' 내부(예: 국회와 행정부 사이)에서나 적용되는 원리일 뿐,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국가적 권력'을 구속할 수는 없다.9
1954년 논문에서 한태연은 대통령을 단순한 행정부의 수반이 아니라, 입법·사법·행정 3권 위에 존재하는 '국가원수'이자 '조정자'로 규정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1952년 발췌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대통령이 의회보다 더 직접적인 국민적 정당성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였다.10
그는 헌법이 규정하는 대통령의 지위가 미국식 대통령제의 집행부 수반 성격과, 프랑스나 독일 바이마르 헌법상의 국가원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한국의 안보 현실상 대통령은 3권 분립의 틀에 갇히지 않는 '통치권'의 주체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훗날 '통치행위론'이 한국 법학계에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3
제헌헌법과 1952년 발췌개헌을 거친 제1공화국의 헌법 구조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요소가 혼재된 기형적 형태였다.11 한태연은 이러한 혼합 형태가 권력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하고 국정의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제 요소: 대통령 직선제, 법률안 거부권.
의원내각제 요소: 국무총리제, 국무원 의결제, 민의원의 국무원 불신임권.
한태연은 1954년 시점에서 이미 의원내각제적 요소들(국무총리의 지위, 국회의 불신임권 등)이 강력한 행정권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그는 "국무총리론"(1960), "의원내각제의 본질과 가치"(1961) 등의 후속 연구를 통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권력 구조의 순수화(즉, 강력한 대통령제 또는 순수 내각제)를 주장했다.3
한태연은 의회(민주적 권력)를 파벌적 이익의 각축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1954년 논문에서 그는 정당 정치의 미성숙과 국회의 비능률성을 지적하며, 국가적 통합을 위해서는 의회의 권한이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7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정치 기구의 능률 극대화만이 자유의 실질적 기초를 창조할 수 있다"는 그의 후기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7
한태연을 단순히 권위주의의 옹호자로만 평가하는 것은 1950년대 그의 학문적 성과를 오독하는 것이다. 그는 1954년 "기본권 서설", 1955년 "평등의 원칙" 등의 논문을 통해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한국 헌법학계에 '자연권(Natural Rights)'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3
그는 기본권이 헌법이 창설한 권리가 아니라, 헌법 제정 이전부터 존재하는 '전국가적(前国家的)이고 초국가적(超国家的)인 권리'라고 규정했다.3 이는 국가권력조차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 존재함을 이론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초기 한국 헌법학사에서 매우 진보적이고 중요한 성취로 평가된다.
여기서 한태연 헌법학의 결정적인 모순, 혹은 변증법적 긴장이 발생한다.
국가권력 강화론: 국가의 생존과 효율성을 위해 대통령에게 초헌법적 권한(국가적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
자연권 옹호론: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권력보다 상위의 자연법적 질서에 속한다.
한태연은 이 모순을 "국가의 존재 없이는 개인의 자유도 없다"는 논리로 해결하려 했다.7 즉, 강력한 국가권력은 자연권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권이 실현될 수 있는 물적·제도적 토대(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를 마련하기 위한 '필요악'이자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1970년대 '한국적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유보하고 국가 동원을 정당화하는 핵심 논거로 작동하게 된다.12
한태연 교수의 "권력분립과 대한민국헌법"(1954)은 서구의 권력분립 이론을 한국의 현실에 맞게 수정·변용하려는 최초의 주체적인 학문적 시도였다. 그는 몽테스키외의 기계적 도식을 거부하고, 국가의 실존적 위기 상황을 반영한 '동태적 권력분립론'을 제시했다. 이는 헌법을 죽어있는 조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의 투쟁 과정으로 파악하는 정치학적 헌법학의 효시가 되었다.4
그러나 1954년 논문에서 제기된 '국가적 권력'의 우위론과 '능률성' 강조는,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권력의 비대화를 견제하는 논리가 아니라 독재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변질되었다. 1955년 "헌법의 변질과정"에서 그가 예견했던 '권력의 집중' 현상은, 결국 그 자신이 기초에 참여한 유신 헌법을 통해 제도화되었다.13
한태연의 1954년 연구는 한국 헌법학의 '야누스'적 얼굴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기본권의 자연권적 성격을 규명하여 입헌주의의 기초를 다졌으나3, 다른 한편으로는 주권과 결단에 대한 과도한 강조를 통해 헌법의 규범력을 약화시키고 '힘의 논리'를 헌법학 안으로 끌어들였다.4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헌은 헌법이 권력을 통제하는 규범으로 작동하기보다는 권력을 조직하고 정당화하는 도구로 인식되었던 개발연대 한국 헌법학의 명암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료(史料)이다.
[주요 인용 및 참고 문헌 분석]
1: 『법학연구』 1954년 창간호의 서지 정보 및 한태연 논문의 수록 위치 확인(보고서 저자=학회지 소유).
8: 한태연 헌법학의 핵심인 '국가적 권력' 대 '민주적 권력'의 이원론적 구조 분석.
3: 제1공화국 당시 혼합형 정부 형태에 대한 비판과 대통령 중심제 지향성 확인.
3: 1950년대 한태연의 '자연권' 및 '기본권' 연구 성과와 그 의의.
7: 1954년 이론이 후기 유신 체제 옹호 논리(능률성, 반공주의)로 연결되는 맥락.
3: 독일 공법 이론(슈미트, 옐리네크)의 수용과 한국 헌법학 형성기에서의 역할.
1. 통합검색 - 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참고자료 2.
2. 법학연구 창간호. 1954년 한국법학협회 발행(저자 소장)
3. 서울법대 헌법⋅통일법 연구 70년
4. 憲法學者 韓泰淵 - 헌법학연구 : 논문
5. 아시아 지역의 입헌주의 - 헌법재판소
6. 헌법상 기능적 권력분립론의 행정법적 수용에 관한 연구
7. 「논단」유신헌법 안|능률정치는 자유의 기초-한태연<헌법학자> - 중앙일보
8. dCollection 디지털 학술정보 유통시스템 - 고려대학교
9. 제4공화국 권력분립론 비판: 국가적 권력과 민주적 권력의 구별과 그 제도화
10. 발췌개헌(拔萃改憲)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1. 한국형 대통령제의 구조적 특징에 관한 연구
12. 1950~60년대 자유민주주의 개념의 궤적 ―『사상계』를 중심으로
13. RISS 검색-...
14. 끝이 좋지 않았던 '유신학자 한태연' - 민족문제연구소
15. 참고자료 9
기자=최득진 주필(법학박사, 전 대학 교수, 평생교육사, 교육사회 전문가, 사회분석 전문가, 심리상담 전문가, 외교안보 평론가, AX 리서치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