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고강도 한미 협상은 한국산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재처리 범위 확대라는 전례 없는 합의를 이끌어냈고, 동시에 한국 외교·안보·산업 체제 전반을 재편할 거대한 기회의 창과 높은 전략적 리스크를 동시에 열어젖혔다.
2주간의 협상이 끝나고 공개된 ‘조인트 팩트 시트’는 단순한 무역·통상 문서가 아니다. 이번 합의는 미국이 요구한 경제·안보 연계를 한국이 일정한 룰과 안전장치를 확보한 상태에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동맹의 작동 방식이 구조적으로 한 단계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상업적 합리성 원칙" 아래 제한했다는 점은, 동맹을 경제적으로도 상호성의 틀 안에 재배열하려는 한국의 시도가 일정 부분 성과로 이어졌다는 신호다.
그러나 이 문서의 중심축은 명백하다.
핵추진 잠수함(원잠)의 ‘한국 건조’ 합의다.
대통령실은 잠수함의 건조뿐 아니라 선체와 원자로까지 국내 제작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연료로 쓰일 농축 우라늄만 미국 공급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산업 입지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조선·원자력 기술력을 기반으로 동맹국 미국이 핵추진 기술 협력의 문을 여는 역사적 결정이다. 미국이 1958년 영국을 예외적으로 승인한 이후, 사실상 봉쇄하다시피 했던 기술 협력의 문이 한국에 열린 것이다.
동북아 안보 구도에서도 이는 중대한 변곡점을 의미한다.
한국형 원잠의 예상 제원(5,000톤급 이상, SLBM 15발 이상 탑재 가능성)은 기존 디젤 잠수함이 가질 수 없던 고속·장기 은밀작전 능력을 부여한다. 이는 한국이 사실상 "잠수함 기반 2차 보복 능력"에 근접한 억제 옵션을 보유하게 됨을 뜻한다. 물론 한국형 SLBM은 핵탄두가 아니라 재래식 탄두라는 점에서 미국·영국의 SSBN과 다르지만, 동북아 전략 균형에서 그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
이번 협상에서 또 하나의 핵심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범위의 확대다. 이는 123협정 체계—20% 미만 농축도 사전 동의를 요구하는 고도의 통제 구조—를 실질적으로 재조정하는 의미를 가진다. 한국은 ‘평화적 이용 확대’라는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국제법·국제정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NPT 체제는 "핵무기 비확산"을 명기하지만 실제로는 군사적 핵물질 생산 능력 자체를 강하게 제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다음 질문을 다시 불러낸다.
“어디까지가 평화적 이용이며, 어디서부터 군사적 성격인가?”
이 문제는 법적 논쟁을 넘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 체제, 미국 의회의 승인 절차, 중국·일본·북한의 외교 대응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정치적·전략적 난제다.
특히 주변국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중국은 이미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고, 일본은 자체 핵잠 도입 논리를 강화할 동기를 얻게 되며, 북한은 SLBM·핵어뢰 개발 가속화 명분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동북아 군비경쟁의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한다.
동맹의 산업 구조에서도 변화는 거대하다. 핵잠 건조를 계기로 조선업은 군함·잠수함·해군 지원함까지 확장된 포트폴리오를 확보할 수 있고, 원자로 기술은 자연스럽게 SMR과 차세대 에너지 산업으로 파생될 여지가 크다. 여기에 AI·반도체 협력이 ‘패키지 딜’로 묶이면서 한국은 스스로를 “AI 3강, 아시아 AI 수도”로 규정하는 전략적 포지션을 꺼내들었다.
한·미 동맹은 명백히 “안보자산 ↔ 경제·기술자산” 교환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에는 값비싼 비용이 동반된다.
핵잠 한 척당 3조 원, 최소 3~4척 이상을 요구하는 전략 환경을 감안하면 수십 조 원의 장기적 재정 부담이 필연적이다. 국회·정당·여론·예산 구조에서 상당한 정치적 갈등이 예상된다. 외교적으로도 NPT 체제 내 투명성 확보, 미국 의회 승인, 중국과의 관계 관리라는 고난도 퍼즐이 남는다.
즉, 이번 합의는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을 향한 출발 신호다.
향후 10년은 협상 → 법·제도 정비 → 예산 → 설계 → 건조 → 전력화라는 복잡한 연속체가 이어질 것이고, 한국 사회는 그 비용과 리스크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답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은 지금 ‘핵잠의 시대’ 앞에 서 있다.
핵추진 잠수함,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 조선·원전·AI·반도체로 이어지는 동맹 기반 산업 재편은 분명 한국의 전략적 지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거대한 기회다.
그러나 이 기회는 일관된 전략·민주적 통제·산업 기술 내재화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만 실질적 국력으로 전환된다.
10년 뒤 한국의 바다와 공장, 연구소와 데이터센터의 모습은 지금 내리는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이 거대한 기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 최득진 박사 (국제법학 · 외교안보 평론가 · 사회분석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