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공개를 앞둔 새로운 국방전략(NDS)에서 한국과 타이완을 아시아 방위선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제 사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2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를 “한국전쟁을 불러온 애치슨 라인의 재현”이라고 평가하며, 동북아 안보 지형이 근본적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자료=기사 내용을 기반으로 최고 위험도를 10으로 설정,아시아 방위선 시나리오별 위험도를 시각화한 것이다(국제외교안보 전문가 최득진 박사 제공).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시카고대)는 “애치슨 라인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어 한국전쟁이 촉발된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이 한국이나 타이완을 제외한다면 억지력이 붕괴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중국과 북한이 미국의 후퇴를 시험하기 위해 더 공격적인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내 전문가들도 같은 우려를 제기한다. 국제외교안보 전문가 AXINOVA R&D 최득진 박사는 “미국이 동맹의 일관성을 무너뜨릴 경우, 한국 사회 내에서는 ‘자체 핵무장론’이 급격히 부상할 수 있다”며 “이는 동북아 전체의 군비 경쟁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 정부는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으나, 군 안팎에서는 심각한 우려가 감지된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주한미군과 확장억제(핵우산)가 흔들린다면 한국은 핵무장 또는 독자적 미사일 방어망 강화라는 새로운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내 여론 또한 민감하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과반 이상이 ‘조건부 핵무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이는 단순한 전략적 논의가 아니라, 실제로 미국의 방위선 후퇴가 가시화될 경우 한국 사회의 정치·외교 지형을 뒤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와 국무부는 한국·일본·타이완을 모두 포함하는 기존 방위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러나 JD 밴스 부통령 등 ‘개입 신중파’는 미국의 해외 관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워싱턴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행정부 내 일부는 ‘한국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대신 미국의 관여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며 “이는 동맹 신뢰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반대로 미국 내 트럼프 지지층은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방위선 축소론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오하이오주 공화당 지지자 마크 스미스는 “미국 납세자들이 한국과 타이완을 지키기 위해 무한정 돈을 쓸 이유가 없다”며 “중국과 북한 문제는 그 지역 국가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방위선 재설정 가능성을 주시하며 내심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타이완을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면 중국은 무력 개입 부담 없이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다”며 “이는 ‘대만 통일’ 전략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역시 비슷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방위선에서 배제될 경우, 북한은 “미국이 한국을 버렸다”는 선전전을 강화하며 군사적 도발 수위를 높일 수 있다. 이는 한반도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정학적 사고가 빈약하고, 중국 군사력 확대를 억제하려는 의지도 미약하다”며 “동맹국들이 공동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일본·타이완이 미국 의존 일변도의 안보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자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미사일 방어망과 정보 공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타이완 역시 비공식적으로 이 협력 구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변수는 여전히 이 연대의 최대 불안 요소다.
트럼프 행정부의 새 국방전략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동북아 안보 지형과 국제 질서를 뒤흔들 중대한 분수령이다. 미국이 ‘제2의 애치슨 라인’을 긋는다면 한국전쟁의 교훈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한국은 자주 국방과 동맹 신뢰 사이에서, 미국은 개입 축소와 세계 리더십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