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공개된 「AI기본법 시행령 초안」에는 다소 생소한 숫자가 등장한다. 바로 “1026 FLOPS”다.
초안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 초거대 인공지능의 범위는 1026 FLOPS 이상의 연산량을 필요로 하는 모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로 한다.”
이는 단순한 수치 제시가 아니라, 초거대 AI 모델을 규정하기 위한 상징적 경계선으로 등장한 것이다. FLOPS(Floating Point Operations Per Second)는 1초 동안 수행 가능한 부동소수점 연산 횟수를 뜻하는데, 현재 세계 최강 슈퍼컴퓨터조차 1018 FLOPS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1026 FLOPS는 현존 기술보다 1억 배 이상 앞선 가정치로, 현실적 성능이라기보다는 정책적 시그널이다.
이 수치가 주목받는 이유는 기술 현실과 정책 비전의 간극 때문이다. 현존 AI 모델, 예컨대 GPT-4 같은 초거대 언어 모델조차 학습 과정에서 수십~수백 ExaFLOP-days(1018 FLOPS 단위의 연산량)를 소모하는 데 불과하다. 그런데 법안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 옥토플롭스(1026 FLOPS) 수준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는 “머지않아 등장할 수 있는 차세대 초거대 AI를 상정한 대비책”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당장의 기술적 한계를 반영하기보다는, 미래에 도래할 AI가 사회·경제 전반에 미칠 거대한 충격을 선제적으로 포착하려는 규범적 장치라 할 수 있다.
■ 정책적 함의와 논쟁
정책적으로 이는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낳는다.
긍정적 시각: 정부가 “현재”가 아닌 “미래”를 기준으로 제도 설계를 시도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기술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인 만큼, 미래에 벌어질 초거대 AI의 영향력에 대응할 법적 기반을 미리 마련했다는 의미다.
비판적 시각: 지나치게 비현실적 수치가 법안에 포함될 경우,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정책 문서가 산업계의 신뢰를 얻으려면 기술적 타당성과 사회적 합의 가능성이 모두 확보되어야 한다.
■ 결론: 정책적 상징에서 실효성 있는 기준으로
“1026 FLOPS”라는 숫자는 지금 당장 달성 가능한 연산량이 아니다. 그러나 그 수치가 가지는 정책적 상징성은 크다. 이는 곧, 한국 정부가 AI 규제 프레임을 단순한 현재 대응 차원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 안전망으로 설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과제는 명확하다.
추상적 수치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계·학계·시민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실질적 기준으로 다듬어야 한다.
동시에 국제 협력 속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조율할 필요가 있다.
결국, 1026 FLOPS는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초거대 AI 시대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질문 그 자체인 셈이다.
최득진 법학 박사:
법학 박사 | 이노바저널 수석칼럼리스트 | AI 리서치 컨설턴트 | 국제마케팅·외교전략 전문가 | Chat GPT AI 1급 지도사